인생이 외로운건데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잘 적응이 안된다
로뎀나무 아래 앉았던 엘리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다윗도 모세도 예수님도
다 그 외로움을 아셨는데.. 인생의 외로움을..
더 정확히 말하면 사역의 외로움 이려나..
왜 외롭냐?
이걸 이해 할 사람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다..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길, 그 외로운 싸움..
사명을 가졌다 하니 거창해보이네. 내가 뭐 그렇다는건 아니고
한 두 달 정도 사명자라는 노래를 계속 했다.
집회에서도 예배에서도
(사실 사명자란 노래 자체는 주된 명제가 사명자와 사명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노래 제목도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사명자는 무엇인가?
어제 반창고 녹화에서 어렴풋하게 난 그 겉옷 정도 알거 같았다. 이 시대 마지막 순교자 탁명환 소장님의 이야기였다. 그 강연 주제와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난 듣는 내내 사명자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마음 속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한 시간 정도 그 간증.. 눈물이 나는걸 애써 참았다. 아버지를 이도교의 테러에 잃어버려 안쓰러워 우시는 방청객 아주머니들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테러당한 슬픈 가족 스토리도 눈물 겨운 비운의 스토리도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바로 그 이야기였다. 그 삶은 참 외롭고 고독했지만 눈부신 십자가의 길이었다. 강연이 끝났는데 골방에 들어가 펑펑 울고만 싶었다..
사명자의 삶..
정기예배 콘티를 써놓고 일주일이 지나도 몰랐던 이야기를 예배 하루 전날에서야 알게 됐다.
곡은 늘어놨는데 내가 왜 이 곡들을 뽑아 놨는지 모르고 거의 2주를 보냈는데 말이다.
예수. 구원. 그리고 사명.
어제 받은 영감으로 송리스트를 완성해갔다.
그리고 예배가 올려졌다.
시작 부분은 한 소절 한 소절 그냥 불러 넘기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어느새 중반을 지나 간단한 쉐어링 그리고 기도
애 쓴 보람이 있다 해야 하나..
참 많은 아이들이 기도제목을 통해 우리 예배가 한 마음으로 드려졌음을 고백해줬다.
예배를 드리기 전엔 늘 고민한다..
이 예배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
해라. 원래 너의 힘이 아니었다.
하라 하셔서 했다..
마지막 찬양 즈음 이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를 이제 나 알 수 있겠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여러분이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가끔 고선교사님이 말씀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필리핀에서 집회가 끝나고 앉아있는데 문득 하나님이 물어보셨다 한다.
‘내가 저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줄 아니?’
그리고 아주 조금 그 마음을 보여주셨다 한다.
그 순간 선교사님은 감당 할 수 없는 거대한 하나님의 전달 앞에 몇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셔야 했다고..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아주 이따금 하나님이 나에게도 작게 보여주셨던 그 눈물..
흘러 내리는 눈물의 의미..
그걸 설명하고 싶었다. 찬양을 잠시 멈추고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이 흐름 가운데 느낄 이는 느끼리라 생각하고 설명하려던 마음을 거뒀다. 자연스레 그 마음을 싣고 가사에 집중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한 친구가 이런 문자를 보냈다.
마지막 찬양을 할 때
‘가슴 속에서 흐르는 눈물’의 가사를 느꼈다는거였다..
눈에 흐르지 않는데 뭐라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가슴 속에서 펑펑 우는 그 느낌을..
눈은 울지 않는데 가슴이 우는 그 느낌을..
그리고 ‘울지 말아요 세상 모두가 주의 이름을 부를거라’ 고백하는 그 순간
그 날의 기대로 감격의 눈물이 가득 채워졌다고..
그리고 마지막 기도제목. 생각나는 한 사람 위해 기도하자 했는데
한 사람이 떠오르기보단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기도가 되더라는 것이었다. 기도하면서 느낌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싶은데 느끼기에 두려운건지 감당이 안되는걸 알앗는지 별 생각 안나고 방언과 눈물만 나오는 것이었다며 정기예배에는 특별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오늘도 또 그 커다란 부르심 앞에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한다..
사명이 뭐냐 물으신다면 난 아직도 무슨 대답을 할지 모르겠다.
네가 사명자냐? 물어도 난 대답을 주저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거 하나는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나..
지금 이 길을 굽히지 않고 걷겠다..
포기 하지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겨우 작은 약속 하나.
2015. 9. 19. @ 부르신 그 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