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라는 것이 성인에게만 존재 하는 것인가?
어리면..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 질 필요가 없는가?
학생은 본인의 책임으로부터 늘 자유로운가?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생각의 줄이 여기까지 왔다. 공부.
우리 사회는 ‘공부를 위해’ 라는 명제 앞에 참으로 관대하다.
신기하게 ‘공부’라고만 하면 그 외의 모든 책임을 후순위로 여긴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사회? 교회도 마찬가지다. 권사님 장로님도 별 수 없지 않나.. 자녀를 주일예배 대신 학교와 학원으로 보내시는데..
공부 해야 하니 반장 하지마. 공부에 방해 되니 친구 만나지마. 성적 잘 나왔으니 컴퓨터 해. 성적 잘 못 받았으니 놀러 나가지마. 간단히 말하면
‘너 공부 하는데 방해 되니까 하지마’
‘너 공부 하는데 도움이 되니까 해’
그러니 ‘공부’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온 몸으로 교육 받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결과는 비참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 혹은 공부를 향한 사회 구성원들의 집착과 욕망은 삐뚤어진 사회를 만들었다. 국민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작은 약속, 큰 약속 가릴 것 없다.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도 개나 주는 나라가 이 나라 아닌가. 국회의원 평균공약이행률은 3-40%. 약속을 반도 안지킨다. 어떤 사람은 10개를 말하면 1개 간신히 지킨거다. 안 지킬 약속으로 유세한다. 참으로 뻔뻔하기도 하지.
자기의 사랑이 성취되지 않았다며 옛 연인과 가족의 삶을 파탄 내버리는 청년들. 내가 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관 없이 자신의 삶의 영위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공부. 라는 단어의 치환.
젊은 애들이 갈수록 이기적이다? 책임감이 없다? 요즘 애들은 배려를 몰라? 참을성이 없어?
그게 다 애들 탓인가?
그 뿌리가 여기 있는데..
‘엄마가 다 해줄게, 넌 공부만 해..’
